1975년 일본 캐릭터전문회사 산리오는 '스누피'를 꺾을 캐릭터가 필요했다.
'스누피는 개니까 우리는 고양이로 가볼까?'
이런 생각에 대충 동글동글한 아기 고양이를 만들었다.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아 이름도 붙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아기 고양이는 곧 일본 소녀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키티라는 이름을 얻어냈다.
단카이 주니어가 이끈 헬로키티 현상이다.
단카이 주니어는 전후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의 자식세대.
이들은 풍요한 부모세대와 달리 과열경쟁과 고독에 시달렸다.
'이지메'를 사회적 문제로 대두시킨 세대이기도 하다.
헬로키티는 그런 단카이 주니어들의 친구였다.
무표정한 얼굴에 입이 없는 대신 무엇이든 다 들어줄 것 같은 커다란 귀.
그리고 왠지 슬픈 눈과 악의라고는 품을 것 같지 않은 원형의 얼굴.
정서적으로 피폐했던 단카이 주니어들은 키티에 열렬히 공감했다.
그리고 2013년 구데타마.
올해로 43년이 된 키티를 대신해 일본 젊은이들을 대변하고 있다.
구데타마의 이름은 술취한 듯 흐느적거리고 게이른 달걀이라는 뜻이지만 정체는 무정란이다.
난자와 정자의 결합이 아닌 무성(無性)이자,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무성(無成)이다.
트위터 팔로어가 62만명이 넘고 일본의 네이버 '라인'에서 가장 많이 내려 받은 이모티콘 캐릭터 1위다.
카카오톡 스티커로도 제작됐고 연필, 노트, 가방, 잠옷 등 1700여개 상품으로 출시됐다.
일본 젊은이들이 구데타마에 열광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성격 때문이다.
그냥 포기해 버리고, 게으르며, 냉소적인 성격.
'귀찮아', '아무것도 하기 싫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고
유일한 낙은 베이컨을 이불 삼아 자는 것.
코앞에 있는 리모콘을 집으로 일어나는 것도 귀찮아 한다.
그리고 '이제 집에 가도 되느냐', '날 좀 내버려둬'라는 말을 툭툭 내뱉고
'좋은 아침'이란 인사말도 비꼬아 '오하요고자이마셍'(좋은 아침이 아니네요)라고 한다.
예쁘지도, 성실하지도 않은 구데타마가 일본 젊은이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자신들의 신세와 생각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연애조차 관심없고, 취업은 단념했고, 단기 알바로 생계를 잇는 지금 젊은이들 모습이
아무것도 생산할수 없는 '무정란' 신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데타마의 인간 친구 이름도 '사토루'.
연애, 가정, 직장 다 포기하고 그냥 현실에서 안주하며 사는
달관 세대인 '사토리'세대에서 따왔다.
"구데타마는 원하는 것(달걀요리)은 무엇이든 될수 있지만 스스로 체념해버렸다.
그런 모습은 더 잘나고, 더 행복하고, 더 생산적으로 돼라고 강요하는 사회에
'됐어', '절대 안 해', '못하겠어'라고 냉소하는 일본 젊은이들 모습과 꼭 닮았다." <쿼츠,2016.8.12>
내말을 들어줄 키티가 필요했던 일본 젊은이들은 이제 구데타마처럼 다 귀찮고, 다 포기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젊은이들은 무엇에 위로받고, 무엇이 그들을 대변하고 있을까?
카카오의 '라이언'.
곰처럼 생겼지만 갈기 없는 사자이다.
카카오톡 이모티콘 판매도 압도적이고 카카오 캐릭터 상품 매출도 압도적이다.
동글동글 귀여운 얼굴에선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다. 입도 없고 표정도 없다.
무심해 보이지만 가만히 내 말을 들어줄 것 같은 느낌. 마치 키티처럼 말이다.
젊은이들이 라이언에 열광하는 이유를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라이언은 사자이지만 갈기가 없다는 콤플렉스가 있다. 어쩐지 외로워 보이고 아웃사이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친구들을 위로하는 포용력 있는 캐릭터다.
경쟁에 치인 20, 30대들에게 라이언은 자기 자신을 보게 하는 거울이자, 자신을 위로해 주는 친구인 것이다."
일본과 비교하면 캐릭터에 반영된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심정은 아직은 누가 슬픈 내 얘기를 그냥 좀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 포기하고 싶고, 귀찮고, 모든 게 비딱하게 보이는 '무정란' 캐릭터에 한국 젊은이들이 열광할 날도 어쩌면 머지 않았다.
이들의 현실을 보면 말이다.
[칼럼출처: TTimes 2017.02.23 / 이미지출처: Sanrio, Kakao]
#앞으로_나를_구데타마라_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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